내항인들, 요즘 말로는 '대문자 I'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SNS 등지에선 그들에 대한 밈(Meme)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죠.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내향인들의 이미지는 대부분 이러합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쭉쭉 소진되는 사람들, 주말 내내 집에만 있어도 전혀 심심하지 않은 사람들, 집 밖으로 한 발자국 나온 순간부터 매분 매초 집에 가고 싶단 생각만 하는 사람들. '대문자 I'로서 말하건대, 전부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활력을 얻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력을 소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타고난 체질이 그러할 뿐입니다. 특히 낯선 사람들과 두어 시간 이상 어울릴 때는 '방전'이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절실히 체감하곤 합니다. 그래서 내향인들은 사람들을 만날 때 무조건 금요일에 약속을 잡는 게 좋습니다. 배터리가 방전됐으니 주말 내내 침대에 뻗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러나 아무리 내향인에게도 종종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가 찾아오곤 합니다. 주로 일주일 이상 충분한 휴식을 취하여 배터리가 빵빵해졌을 때가 그렇습니다. 그런 상태가 뒷받침된다면 사람들이 여럿 모이는 자리일지라도 용감무쌍하게 참석 의사를 밝힐 수 있습니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사이에 말없이 끼여 앉아서도 제법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뒤에는 최소 48시간 이상의 재충전 기간을 가져야 하지만요.
지난주에는 신촌에 있는 에어플레인 모드에 다녀왔습니다. 머리 위가 훤히 뚫린 루프탑 좌석이 있는 바입니다. 혼자 조용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떠들썩하게 어울리기에 알맞은 곳입니다. 당연히 저 같은 '대문자 I'와는 상성이 그리 좋은 곳은 아닙니다만, 다행스럽게도 저를 간택(?)해 준 유쾌한 E형 친구들이 있어 당당히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있으면 혼자 있을 땐 결코 겪어보지 못할 것들을 겪어보게 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면 칵테일 글라스도 이날 처음 봤습니다. 괜히 기분이 들뜬 탓인지 평소에는 아예 마시지 않는 술도 조금 마셨습니다. 마냥 사람을 싫어할 것처럼 보이는 내향인들도 결국엔 사람이고, 역시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얻는 게 있나 봅니다. 에너지를 잃고, 좋은 사람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얻는 것처럼요.